맞춤형 교육을 통한 학습자의 주체성 발현 박단빈 수업을 준비하면서 저는 우선 저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점검했습니다. 봉사 대상은 초등학생들이었고 초/중등 학교 수준의 개념을 알려주는 활동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에 맞추어 개념을 복습한 후 초등학교 고학년 단원평가와 중학교 저학년 중간기말 시험을 풀어보았고 틀린 문제는 없었습니다. 사전 문의에 따르면 대상 학생들은 예습 과정에서 피타고라스의 정리, 근의 공식 등의 개념을 어려워한다고 했는데, 제게는 구구단처럼 나오는 것들이라 가르치는 데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또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그 공식들을 적용한 문제도 수없이 많이 풀어봤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문제가 나와도 원활히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설명 예행 연습을 거치며 제게는 그 이론을 증명하고 적용에 대한 예시를 들어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재를 찾아 유도 과정을 다시 익혔고, 문제들을 풀며 응용이 필요한 부분을 암기했습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제가 설명하는 원리가 성립하는 이유와, 적용 방법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누군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서 전자는 후자의 필요조건이 맞지만, 서로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활동 초반기에 저는 '준비된 설명을 완벽하게 말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다른 것을 신경 쓰다가 설명 내용을 빠뜨리거나 해서, 준비해 온 것을 다 못 보여주는 경우가 생기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런 방식의 설명으로 이해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에도 설명은 계속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뒷부분의 의미는 사실상 없게 되어버렸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음에도 저는 그저 저의 설명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회차가 쌓이던 중 한 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는데, 그것은 제가 그 학생에게 여러 차례 설명해 준 방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내용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지난번과 거의 동일한 내용/순서로 설명하며 단계별로 반응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생각났다고 할 때까지만 하고 나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한데 설명이 끝날 때까지 그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러한 내용을 접해본 기억이 있는지를 되물었을 때 그 학생은 생전 처음 접하는 것이라 답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설명 도중 수시로 학생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는데, 그를 통해 파악한 상황은 제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설명을 듣다가 눈을 감아버리는 학생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저 빨리 끝내고 답을 얘기해주길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전까지 저는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한 설명을 잘 들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놀람과 동시에 배신감까지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지금 배우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제게 도움을 청한 것인데, 저는 더 어려운 개념을 가져다가 복잡한 설명을 늘어놓았으니 알아들을 턱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허나 그때까지도 저는 그것이 설명 속 정보가 부족했고, 제 학문적 지식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 탓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 제가 맡은 학년/과목을 담당하는 강사의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그분들은 명문 대학에서 해당 학문의 학사 학위 이상을 지니고, 교사자격증까지 취득한 이들이었기에 저보다 훨씬 멋있는 설명을 제공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수강 연령층이 어리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기초적인 내용부터 되짚었고, 쉽다 못해 유치하게까지 느껴질 법한 예시를 들며 가르쳤습니다. 중학교 내용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초등학교 내용은 유치원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저는, 제가 여태 '있어 보이는 설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좋은 교수자는 지식을 늘어놓으며 본인의 전문성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지식을 단순한 말로 쉽게 풀어 설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의 봉사는 점차 설명 봉사에서 교육봉사로 변화했습니다. 알아듣기 좋은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습자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습자들이 문제를 풀 때의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어느 정도 난이도에서 얼마나 고민하는지, 얼마나 맞추는지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서 현재의 수준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학생들의 학습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학생이 애초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었고,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괴롭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알려고 하는 마음보다 그저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적어도 열심히 할 때의 결괏값이 필요한데 애초에 알고자 하는 마음이 약하니 열정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필요한 내용을 모르는데 왜 알려고 하지 않는지, 몇 번이고 설명해 줄 수 있는데 왜 한두 번 듣고 모르겠으면 포기하는지가 답답했습니다. 머지않아 저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의 학생들은 강사의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선수학습 요소의 회상에 실패할 때마다 혼이 나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다른 강사들로부터 '이렇게 설명했는데 왜 알아듣지 못하냐, 지난번에 얘기해주지 않았냐, 이걸 왜 모르냐?'는 식으로 다그침 받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학생들에게는 설명의 내용이 와닿지 않을 때, 그것을 되물어 알아가려 하기보다 그냥 적당히 넘어가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또한 그 다그침의 영향으로 학생들은 기억을 잘 못하거나, 이해가 느리다거나 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잘못을 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강사들이 그에 대해 나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설명에서 답을 알려주지 않고, 여러 질문을 통해 학생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게 유도했습니다. 앞부분 내용의 숙지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면서 모르는 부분을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상태에 따라서는 이전 학년의 개념까지 개의치 않고 알려주면서 계속 질문을 던져 어떻게든 직접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교육 시간은 학생들에게 '답을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힘을 기르는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방식은 학생들의 상태를 매 순간 인지하며, 맞춤형 질문들을 던지고, 추가로 필요한 정보를 추론하는 것까지 더해진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방법 대비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로인해 학생들의 정답률은 점진적으로 높아졌고, 기본 개념조차 헷갈리기 일쑤였던 이들이 응용력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긍정적 변화를 경험한 학생들은, 그 뒤로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저를 찾아주었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개선을 위해 그들에게 저를 자주 찾아오는 이유를 물었고, 답변의 교집합은 '이해가 될 때까지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물어본 부분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한 학기 동안의 교육봉사를 하면서, 현재 교육과정에서 자기주도적 역량과 학습자 맞춤형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을 주입받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의 주체가 되어야 지식을 본인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각자의 필요와 상황에 맞는 지원을 받아야 진정한 학습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주도적 역량은 단순히 교사가 설명하고 학생이 듣는 방식의 수업에서 벗어나서 학생이 학습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해도를 점검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고로 수업은 양방향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교수자는 지식의 입력자가 아닌 탐구의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로써 학습자의 주체성이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한 교사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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